태평양전쟁-일본군무장편(2)

본 게시물은 文春文庫社의 日本軍艦戰記 -半藤一利-님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아야코의 허락없이 번역한 것 자체를 다른곳에 무단게재 및 도용은 금지합니다. -분전하며 전진만이 있을 뿐 우가키 마토메宇垣纏 1890(메이지23)년생. 오카야마(岡山)현 출신. 해병40기, 졸업성적 144명중 9등. 해대 졸업. 그의 일기[전조록(戰藻錄)]은 귀중한 기록. 해군중장. 개전직전부터 야마모토이소로쿠(山本五十六)연합함대사령장관이 전사할때까지, 그의 참모장으로써 작전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야마모토는 이사람을 상당히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좋은 보좌역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첫번째로 [철가면]이라는 별명이 붙은 오만불손한 성격이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총수의 근원은 인격이다]가 신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략관은 외골수의…Continue reading 태평양전쟁-일본군무장편(2)

태평양전쟁-일본군무장편(1)

본 게시물은 文春文庫社의 日本軍艦戰記 -半藤一利-님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물은 2차 저작물이기 때문에, 아야코의 허락없이 무단게재 및 도용은 금지합니다. -가미가제 특공의 선두 아리마 마사후미有馬正文 1895년 출생. 가고시마현 출신. 졸업성적은 95명중 33번째. 해대졸. 수뢰분야에서 항공분야로. 전사후 중장. 1943년 10월, 남태평양해전에 있어 항모 쇼가쿠의 함장으로써 분전했던 투장이다. 일본군의 공격이 효과를 거두고, 적기동부대가 퇴각하려할 때, 기동부대의 사령부(나구모츄이치 지휘)는 이걸로 전과는 충분하다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자신의 좌승한 쇼카쿠가 중파당하면서도 이 사람은 완강히 [철저히 추격해야한다]라는 의견으로 정황을 상세히 말했지만, 사령관은 간단히 공격을…Continue reading 태평양전쟁-일본군무장편(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