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최고의 침략국가의 태동
하와이의 원주민의 90%를 학살하며 세운 나라
아메리카 대륙을 얻기 위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의 90%를 학살하였다.
학살의 과정에서 천연두가 묻은 담요를 원주민에게 제공하면서
생화학전의 유례없는 승리(?)를 이룬 미국은 출발에서부터 잘못된 나라였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의 프런티어 정신은 자신의 이익이 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것으로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하와이를 얻기 위하여 미국에게 기대지 않는 원주민의 90%를 학살하면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는 명언을 신봉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국 이후 추악한 형태를 빠짐없이 나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지구의 청부 폭력배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세계침략은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낮은 단계에서는 정치,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가지만,
중간 단계의 침략적 형태로서 불법적 경제제제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경제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달성할 수 없을 때는
불법적인 군사지원뿐만 아니라 군사개입과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베트남 전쟁-스페인 전쟁과 함께 현대사에서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두 전쟁 중 하나
공산주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우리의 편견과 짐승의 전쟁에 회생이 되었던
우리의 젊은 목숨 때문에 베트남 전쟁은 감히 쉽게 거론하지 못하다가
최근 몇 년간 한겨레신문사를 중심으로 새롭게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는 전쟁이다.
베트남 전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베트남 전쟁은 단순한 이념적 대결이 아니라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독립투쟁과 식민주의, 혁명과 반혁명, 통일과 분열, 자유와 억압,
황인과 백인, 서양과 아시아, 낙후와 현대, 농업과 공업, 원시적 소총과 현대식 폭격, 선입관,
사랑, 증오, 인권, 종교의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1) 1차 인도차이나 전쟁 -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 음모와 미국의 개입
2차 대전으로 인하여 베트남에서 물러났던 프랑스는 2차 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으로 물러나자,
베트남을 비롯하여 인도차이나 반도를 재지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식민지배의 음모를 실행하기 위하여 이전에 베트남에 했던 많은 약속을 파기해버린다.
하지만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고 하였던 계획은 베트남의 자주 민중에 의해서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었다.
결국은 프랑스에 대항하여 베트남 민중의 전쟁이 시작되고
54년 5월까지 프랑스는 40만의 군인을 동원하여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의 음모를 알고 있으면서도
프랑스와 베트남 전쟁을 내란으로 규정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른다.
미국은 정치적인 지원은 물론 군사 경제적인 개입으로 확대하며 프랑스를 지원한다.
22억 8천 500만 달러나는 거금을 전쟁 자금으로 지불하고,
나토라는 군사 동맹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군사적 개입도 계속 시도 하였다.
또한 동남아시아 방위 조약기구를 결성하여 인도차이나 국가들은 보호 지역으로 편입하여
이후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지 위한 틀을 만들어 내었다.
2)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과 전쟁 조작
베트남 민중의 자주적인 힘으로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 물러나자
미국은 민중의 삶을 무시하는 남베트남의 고 딘 디엠 정부를 배후 조종하면서
베트남을 식민지화 하려는 의도를 실행으로 옮겨갔다.
미국의 지원을 받던 디엠 정부는 베트남 민족해방 전선에 의해서 무너지게 되자
미국은 군부 쿠데타로 일어난 자들을 지원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지원하던 정당하지 못한 정부가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미국은 통킹만 사건이라는 조작 사건을 만들어 내고 베트남 전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른다.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개입을 하게 하는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었다.
기밀 해제된 <국방부 비밀문서>에 의하면
?북베트남에 대한 정교하고 은밀안 군사작전계획은 64년 2월 1일 ?34알파 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개시되었다.
※ 참고 34알파작전 계획의 주된 내용
①U-2정찰기에 의한 북베트남 공역 침입 및 정찰 강행,
②북베트남 내부 정보 수집을 위한 심리작전 및 특수요원(스파이)의 투하,
③정보수집을 위한 북베트남인의 납치와 유괴,
④북베트남 오지 중요시설 파괴를 위한 파괴반 투입,
⑤철도와 교량 파괴를 위한 해상으로부터의 남베트남 군부대의 기습공격,
⑥소형 고속정에 의한 북 베트남 연안시설의 포격
3) 결과 -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 VS 베트남 민중의 자주의지
잘못된 시작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전력으로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인류의 양심을 비웃듯 대량살상 무기와
생화학 무기(네이팜탄과 수많은 비치사성 생물무기, 고사용 화학 무기)를 동원하며
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라는 미국의 패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베트남 민중의 반제국주의 자주역량은 높았다.
결국 지상병력 54만을 동원하며 문명의 석기시대화를 만들어 내려던 미국은
73년에 만신창이가 된 모습 군사간섭을 중지하고야 말았다.
수백년간 외세의 지배 속에서 외세에 기대면 망한다라는 베트남인들의 민족 해방의 신심이
베트남을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정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3. 라틴 아메리카에서 이루어진 수탈과 학살 말행
미국의 세계 침략사에서 중남미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중남미 지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미국의 만행에 대하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중남미 지역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높은 수준의 문명(잉카문명 등)을 물려 받았으며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남미지역의 경제상태는 좋았다.
하지만 제국주의자들의 수탈로 몰리면서 그들의 경제상황은 급속히 악화되어갔다.
전체적인 생산량은 높아갔지만 그 나라 국민들의 소비량을 줄어들었다.
질 좋고 값 싼 1차 생산량은 계속 늘어갔지만 이들의 이윤은 미국 기업과 친미 독재자의 배만 불려 주었다.
미국 정부가 만들어내고 지원하는 독재자가 국민을 억압하고, 고문하고,
살인하는 것에 대하여 미국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미국이 그들이 독재자이건 아니건 그들이 쉽게 조종할 수 있을 때 그들은 미국의 ?좋은 이웃?이 된다.
일찍이 경제학자 에드워드 허먼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고문과 미국의 원조 사이에 폭넓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투자가의 요구에 맞추기 위하여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수출용 농작물을 생산해야 했다.
그러기 위하여 자신이 먹어야 하는 농지를 줄여야만 했다.
더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는 모델로 인하여 GNP는 꾸준히 올랐으나
대다수 국민들은 굶주리고, 교육 등의 공공 서비스는 계속 감소하는 그야말로 ?경제기적?을 이루어 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 반발을 없애고,
노조나 진보단체를 없애기 위하여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고문과 테러밖에 없었다.
미국의 배후조종으로 중남미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고문과 살인,
테러는 일찍이 보고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은 주로 불법적인 경제 봉쇄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식민지화 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IMF(약소국에만 적용이 되고 미국에는 적용되지 않는) 규정에 이르는
여러 가지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그들의 경제력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독재자에게 군사적인 원조를 진행하거나
군사위협, 군사개입 등을 진행하면서 독재정권을 유지하는데 갖가지 술수를 부렸다.
만약 그 정권이 민심과 완전히 떨어지면 다른 대리 정권을 세운다.
미국의 의사를 거슬리는 지도자라면 그 나라를 침공하여 납치하고 그들의 법대로 처벌해버린다.
1)엘살바도르 -미국이 지원하는 독재자의 학살을 고발한다.
엘살바도르의 아들라카틀(Atlacatl) 부대는 1981년 3월 미 육군 특수부대 학교가
반게릴라전 전문가 15명을 엘살바도르에 파견함으로써 창설되었다.
미국교관들조차 이 군인들은 ?유별나게 잔인하며.... 우리 교관들은 포로들의 귀만 잘라오지 말고
산 채로 잡아오라고 설득하는 데 항상 애를 먹었다?고 하였다.
(노암 촘스키 저,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1996)
1981년 12월부터 이 부대는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대부분이 여자와 어린이, 노인들이었으며 1000여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들은 13세정도의 어린이까지 동원하며
강간, 폭력 등의 나치 친위들의 과정처럼 악마적 심성으로 무장한 군인으로 만들었다.
예수교 잡지 <아메리카>에 실린 군사훈련의 결과를 하나 소개한다.
어느 날 한 농부여인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세 어린 자식과 자기 어너마, 여동생이 식탁 주위를 빙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 자시의 잘려진 머리를 몸뚱이 앞에 식탁에다 조심스레 올려놓고 그 위에 손을 얹고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몸뚱이들이 각자 잘려진 자기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엘살바도르 방위군에서 파견된 이 살인범들은 18개월짜리 아기 머리를 똑바로 세우기가 힘들자
아기의 두 손을 아예 머리 위에다 못 박아 버렸다.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큰 플라스틱 대점에는 먹음직스런 국이라도 담긴 듯 붉은 피가 가듣 담겨 있었다.
산티아고 신부(엘살바도르에서 일하던 카톨릭 신부)에 따르면
이런 소름 끼치는 현장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2)니카라과 - 가난한 자들의 성공을 증오하다.
나카라과에는 소모사라는 학살자가 있었는데 미정부가 지원하던 그는 산디니스타에 의해 위기에 몰렸다.
미국은 자신들의 말을 듣는 독재자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니카라과를 점령할 기반마련을 위하여
소모사의 친위대인 방위군 지휘관들을 적십자 표시가 달린 비행기에 실어 출국시켜주었다.(전쟁범죄에 해당)
미국은 엄청난 군사비와 아르헨티나의 신나치 장군들을 동원하여
콘트라(테러조직-이름은 자유의 투사)를 배후조종하며 니카라과에 대규모 테러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미국의 세계개발 기구인 옥스팸이 나카라과를 지원하고 있었고,
세계개발은행 등은 나카라과를 지원하여 국민들은 기아상태를 벗어나고,
건강, 교육 등의 인간존엄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었다.
미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이 침탈할 수 없는 경제체제에서는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한 어떠한 성공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첫째, 세계개발은행과 인터-아메리칸개발은행 등에 압력을 가하여 모든 사업과 원조를 중단하도록 하였다.
둘째, 테러조직을 동원하여 갖가지 개혁조치와 경제발전이 물거품이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불매운동을 벌여서 조그만 나라를 철저히 짓밟았다.
셋째, 미국은 정부와 평화협상을 하였으며 전국적인 선거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테러단체인 콘트라에 지원을 세배로 늘렸으며 민주세력인 산디니스타가 선거에서 이기면
경제봉쇄와 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공정하지 못한 선거에서 산디니스타는 40%나 지지를 받았다.
미국의 성공은 니카나과의 불행이었다. 악랄한 학살은 말할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은 철저히 짓밟혔다. 미국은 자신의 말을 들어서 실패로 이어지지만
자시의 말을 듣지 않고 성공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성공을 거두었다.
2)미국의 이라크 침공
영토문제와 종교간 갈등 등으로 인하여 8년간 이란과 전쟁을 벌여온 이라크는
미국과 친미대리정권인 쿠웨이트의 정치적,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전쟁을 수행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 미국은 이라크를 배후조종하면서 석유를 확보하고 싶어하였다.
1989년 6월 사담 후세인의 초청을 받은 미국 경제 사절단
(미국의 거대 석유회사들이 포함되어있는)이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후세인은 미국정부에 전후복구와 이라크 개발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미국 사절단은 투자에 앞서 조건을 내세웠다. 이라크 정부가 대외 채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절단은 후세인 정부가 채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국영 석유산업 민영화'를 제시했다.
후세인이 국가 주권의 상징이자 정권의 돈줄이기도 한 석유산업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정부는 후세인에게 약속했던 23억 달러 차관을 동결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군사적 긴장을 놓이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 언론에는
이때부터 이라크의 재무장을 경계하라는 보도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하여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는 친미정권인 쿠웨이트가
이라크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비정상적으로 원유값하락을 주도하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합의를 깨었기 때문에 1990년 7월에는 원유값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이 쿠웨이트의 반칙에 반발했지만 쿠웨이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이라크와 석유수출기구에서 제안하는 협상도 거부하였다.
조그마한 소국인 쿠웨이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배후조종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3)후세인, 미국의 '불간섭 약속' 믿고 쿠웨이트 침공
이라크는 쿠웨이트의 변심 때문에 피를 말리는 위기에 몰렸다.
원유 수출 가격이 곤두박칠치면서, 빚을 갚을 수 있기는커녕 식량 수입마저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이라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쿠웨이트를 점령하여 원유를 적정가격으로 다시 수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7월27일 후세인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 글라스피를 만나
쿠웨이트 분쟁은 미국의 국익에 무관하며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도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의 군사 작전에 미국은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 담긴 이 날의 면담 기록을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 후에 공개했다.
부시(현 조지 W.부시 대통령의 아버지)는 이 문서가 날조된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그 내용은 1년 후 미국 의회에서도 사실로 인정되었다.
미국의 비열한 침공유도 작전에 이라크는 오히려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
우선 쿠웨이트의 왕족부터 잡아 인질로 삼으려고 하였지만 이미 미국이 사우디로 피신시켜 놓았다.
둘째, 쿠웨이트를 침공하자마자 1천억 달러에 이러는 이라크 자산을 동결하였다.
셋째, 쿠웨이트를 점령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침략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넷째, 미국은 다국적 군을 동원하여 이라크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였고, 엄청난 인명손실과 함께 많은 피해를 입었다.
곤경에서 벗어나려는 이라크는 미국과의 비밀회담 기록을 공개하였고, 사실상의 항복선언으로 쿠웨이트에서 철수 하였다.
하지만 이 항복선언은 어떤 소녀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종합병원 산부인과 병동의 조산아 보육기(incubator)에 들어있는 갓난아이들을
집단 살해하는 만행현장을 목격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이라크의 항복선언은 무효화된 것이었다
이라크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미국에서 전쟁 지지 여론에 불을 지른 소녀가,
실은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며 이 인터뷰도 날조극이었다는 것은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다.
이후 이라크는 미국의 강도 높은 경제 봉쇄 조치로 인하여 의약품과 식료품조차 수입하기도 힘이 들었으며
이로 인하여 많은 이라크 어린이들이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유엔을 앞세워 이라크를 완전 무장해제하였고,
지난 3월에는 이라크를 침략하여 다시 이라크 민중을 유린하였다.
우리는 전쟁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날조하고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미제국주의자들을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침략 전쟁을 막는 최선의 길은 미국이 이야기하는 거짓된 평화가 아니라
그들을 타격할 수 있는 무력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 책을 꼭 사서 제대로 읽어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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