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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잡학 태평양전쟁 – 태평양전쟁으로의길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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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잡학 태평양전쟁
저자 : 후미우라 시로
출판 : 나츠메社
번역 : 아약후


태평양전쟁으로의길④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진주(進駐)가 불러온
대(對)일본 석유 금수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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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를 끊긴 일본은, 이윽고 미국과의 전쟁을 결의한다

● 동맹, 조약을 체결하고, [배후의 근심]을 끊는다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의 [남진]을 하기 위해, 일본은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우선은 1940년에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기세인 독일과 일-독-이 3국동맹을 체결. 그리고 다음해에는 최대의 가상적국인 소련과 일-소 중립조약을 체결하여, [북쪽의 위협]을 제거했다. [남진]의 태세는 정비한 것이었다.




●인도차이나에 진주한 일본


1940년 9월 일본은 우선 북부 인도차이나에 진주. 이 진주에는 [원장 루트]를 차단한다는 노림수도 있었지만 영국은 즉각 다른 [원장 루트]인 [버마 루트]의 재개를 통고. 더욱이 미국은 철강등의 대일 수출금지를 행하여, 경제봉쇄로 압박했다.


하지만 일본의 남진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해의 7월 프랑스의 비시정부와의 합의를 성립시킨 일본은 남부 인도차이나에 진주를 감행했다.




●대일석유금수가, 개전의 결정타로


남부 인도차이나의 진주에 대해 미국은 결정적인 경제제재를 실시했다. [일본으로의 석유수출을 전면금지]한 것이다. 유전을 가지지못한 일본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한방이었다. 더구나 일본의 석유수입은 80%를 미국에 의존했던 것이다. 근대국가의 혈액이라고 할 수 있는 석유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해군은 2년이내에 석유부족으로해서 행동불능이 되어 중요산업은 1년이내에 생산을 정지할 것이다. 이대로는 일본의 명운은 확실했던 것이다.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여기까지 이르러서, 대미전쟁은 결정적이되었다. 미국과의 전쟁에 계속 반대했던 해군도 [전쟁도 부득이하다]라는 방향 전환을 했던 것이다. [석유]. 이것이 태평양 전쟁의 방아쇠가 된 것이다.






석유가 아킬레스건이었던 일본



일본의 석유 의존도 : 1940년의 수입



미국 : 76.7%   ///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14.5%   ///   기타.

각국의 연간 석유 생산량



단위 : 1만톤(독일은 합성 석유 포함)



          일 본  /  미 국  /  독 일  /  영 국


1941       —     —        9.6        13.9


1942       1.8     183.9     11.2       11.2


1943       2.3     199.6     13.2       15.8


1944       1.0     222.5     9.5         21.4


1945       0.1     227.2       ?         16.6



현재와 같이 일본은 국내에 유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었지만, 8할을 ‘가상적국’ 미국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또한 동맹국인 독일도 같은 석유부족문제를 안고 있었다. 합성 석유의 제조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 양은 미미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자체적으로 석유를 조달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수입이 막힌 일본은, 상사를 통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석유를 매입하려했다. 하지만 미국의 압력에 의해서 얼마밖에 안되는 양밖에 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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