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안자랑은 팔불출

비록 제 상태는 안좋지만…(자랑이다)

공재 윤두서의 직손임은 확실합니다….(집안 망신이다 OTL….)

안본 사이에 우리집이 유명(?)해 졌군요.

현재는 아버지께서 소유하고 계시지만요….

http://100.naver.com/travelworld/themek/017_yoonds/

(참고로 이쪽 링크된 사이트의 제일 밑 그림은, 고택으로 들어가는 집이 아니라, 작은 조부님 댁입니다…. 본가로 들어가려면 약간 돌아서 가야합니다. 안그러면 가택침입되거나 거기 사는 X개에게 물려서 쌍방울 날아가는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

[본 자료는 해남관광정보사이트에서 퍼온것입니다]

▶ 중요민속자료
♠ 해남 윤두서 고택(海南 尹斗緖古宅)

◆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232호
◆ 지정일시 : 1996. 2. 9
◆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372
◆ 시 대 : 조선시대
◆ 분 류 : 가옥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인 공재 윤두서(1668∼1715)가 잠시 머물렀던 집이라고 전한다. 윤두서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의 3재로 일컬어지며,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자이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큰아들인 윤인미(尹仁美)를 분가시키고 자신도 거처하기 위해 지었으나 해변에 위치하여 해풍이 심해 고산은 해남읍 연동에 기거하고 뒤에 증손인 윤두서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건립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안채의 종도리 장여밑에 중수상량명문 ‘경술후백사십이년신미운운(庚戌後百四十二年辛未云云)’이 있는데 윤두서의 생존연간과 비교해보면 현종 11년(1670)에 지어 후에 윤두서가 살게 되었고, 순조 11년(1811)에 수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안채지붕의 회첨골 암막새에 적힌 명문 ‘동치십년신미구월중수(同治十年辛未九月重修)’를 근거로 할 경우 동치 10년은 1871년(순조 11) 신미(辛未)에 해당되므로 이 ‘신미’년이 안채 장여의 명문중의 ‘신미’년과 같은 해라면 현 건물의 건립연대는 윤두서의 사후(1715)인 173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건물의 위치는 뒤로 북쪽의 망매산을 주봉으로 하였고 앞으로 남쪽의 바다로 훤히 트이며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가 뚜렷한 풍수지리상의 명당터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건립 당시에는 동쪽으로 지은 문간채로 들어가면 우측에 사랑채가 놓인, 전체 48칸 규모였다고 전하나 지금은 문간채와 사랑채는 없어지고 안채 13칸, 곳간채 3칸 및 사당과 헛간 등이 남아 있다. ㄷ자형의 안채는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고, 동쪽 광의 남측지붕은 앞면이 사다리꼴 모양인 우진각지붕이다.

바닷바람의 영향을 막고자 지붕을 높이 쳐들지 않고 푹 덮었으며, 벽은 방의 용도에 따라 회벽과 판자벽을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인 1700년대의 건축수법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평면구성, 두리기둥과 구부러진 퇴보나 대들보의 견실한 결구등이 특이하다.

또 곳간채와 안채 사이에 출입통로가 나 있으며 안채의 한가운데에는 쌍여닫이 정자살문을 댄 대청을 두고 좌우익사(左右翼舍)에는 방과 주방들을 두어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문인화가의 옛집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수법이 잘 남아있는 유서깊은 전통주택이며, 인근마을에 해남 윤씨의 기와집 10세대가 있어 더욱 옛스러운 정취를 풍기고 있다.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T.530-5226)

3 thoughts on “집안자랑은 팔불출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