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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과 하가렌의 대한 소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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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채널 CHAMP에서 하가렌이 4기째를 방영하고 있다.
현재, 방영내용은 클라이막스를 향해치닫고 있다.

뭐랄까.. 에반게리온 이후로 상당히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중에 하나인 이 작품에 대해서 쓰는 이 글은 본인의 넘겨짚기 일 수도 있고 또 하나의 망상일지도 모른다.

에반게리온이 처음 방영하던 시기는 96년 테레비토쿄계였다.
안노히데아키 감독의 특유의 시니컬함과 어두운 분위기로 전개해가던 이야기.

그때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는 아버지와 아들의 단절, 가족파괴 등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거기다가 사도라는 외압적인 요소와 인류보완계획이라는 병영체제 등이 현재의 일본의 모습에 회의적인 모습을 느끼고 있음을 반영하며, 일본인중 일부가 원하고 있는 군국주의체제의 향수가 아닌가하고 생각해보고 싶다. 여타 가이낙스의 대작 중에 전쟁과 관련된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게 내다볼것은

96년의 경제상황을 비교해볼 때(물론 지금도 사정이 더욱 안 좋지만), 그때는 일본의 장기불황의 한창일 때였다고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일본의 게임과 애니메이션 사업이 나날이 발전해 가는 시기였다.

또한 일본의 문화적인 특성상, 남에게 피해주고 자신이 뛰어나 보이려는 것보다는 (좋게 말하자면)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고, (나쁘게 말하자면) 획일화된 생활을 강조하는 분위기속에서 낙오된 이들이 오타쿠일 것이다.
아마도 에반게리온은 그 특성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동시에 안노히데아키 감독의 특유의 기질이 잘 내포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애니를 보면,
이카리신지(碇シンジ)는 항상 독백을 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이외에는 누구도 자신의 세계에 들여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의 도움이 없는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행동만으로 돌파구를 찾으려고만 한다.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타인이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의 드라마와 달리 일본의 애니나 드라마 등에서 남자주인공의 특성은 일본의 고전인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겐지와 흡사함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아주 뛰어난 능력이 있지도 않고, 야망도 없고,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적당히 살아가려는 인물이다. 여타 대부분의 작품을 보면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인물상을 일본인들은 좋아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일본의 상황을 보면 18세기 독일의 어느 지역과 닮아있음을 알 수가 있다.
18세기는 서유럽에서 격동의 시기다.
미국독립전쟁, 프랑스혁명과 더불어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바람이 일고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독일은 그때까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체제와 더불어 수 백 개의 국가로 쪼개진 시절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탄생한 것이 관념론이다.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고 자기의 공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대화와 사고, 그것은 그 좁은 신성로마제국에서 대립하지 않고 조화로이 살 수 있는 비현실성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혼자만의 세계에서 자학하고 파괴적인 신지의 모습과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남들과는 교류하지 않는 오타쿠의 모습, 각자 확실한 구역만을 그어놓고 어느 누구에게도 침범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은 18세기 칸트가 살았던 독일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게도 느껴진다.

이런 지극히 관념적인 일본의 모습은 에반게리온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나타내준다.

그렇지만, 하가렌(강철의 연금술사)에서는 형제가 손대지 말아할 금기(진리)에 다가가면서 사고를 겪고, 자신들의 몸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 현자의 돌을 찾는 고난과 파란만장한 일대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때문에 군에 의해 이용당하고 후에는 배신당하지만, 세상의 더러움 속에서도 두 형제의 서로를 위한 믿음과 애정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에바같은 경우라면 신지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독백으로 끝나는 완전히 자아를 통한 열반을 얻고자 하려했었다. 하지만 하가렌의 경우는 형제애라는 소재를 통하여 서로의 교류는 충돌과 반목이 있지만, 그것을 서로 이해하고 노력해가려는 정반합(혹은 누적하는 역사의 과정), 즉 변증법적인 이론이 강하게 담겨 있다고 본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하가렌에서 처음 시작하는 연금술의 등가교환의 원칙인 것이다.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 – 정립
그와 동등한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 반정립
그로써 무엇인가를 얻었다 – 종합

인과적이면서도 지극히 반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가렌을 보신 분은 알겠지만, 항상 등가교환이라는 단어 등을 캐릭터의 각 대사마다 듣게된다. 각 에피소드마다 변증법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헤겔과 연결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대립이라는 소재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소재이기는 하지만, 결국 결말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현실에 반영시킨다면 범세계적인 관점으로 볼 때는 현재 아랍민족주의와 미국의 전체주의를 이야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현재 일본내의 여러 다원화된 내재적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가렌에서는 군부와 소수 민족 간에 갈등이 시작되고 결말에 가서는 소수민족이 사회의 구성요소로서 받아 들여지게된다. 이 점은 헤겔이 원하는 민족보다 국가에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에 대해서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에바의 폐쇄지향성, 독백, 자아의 세계와 달리 지극히 하가렌은 개방의존성, 협력, 반성이라는 측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 점들을 비교해 볼 때 에바와 하가렌은 시대 변화적인 요소를 내재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일본은 우익화로 인해 잘못된 과거의 반성 없이 국제사회로 발돋움을 해 나가려는 시기이기도 하다. 더욱이 보수주의와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일본에서는 관념론적인 사상이 크게 지배를 하고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변증법에서 말하는 갈등을 극복하고 누적해가는 역사과정, 이것을 하가렌의 감독은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3 thoughts on “에반게리온과 하가렌의 대한 소고찰

  1. 원래 소년 만화가 갈등을 극복해가는 만화이기 때문에 그런거 아닐까요. 에반게리온은 원래 성인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2. 아 코믹판 하가렌은 본적이 없습니다. 그저 애니메이션판만을 보고 쓴 것입니다.
    하지만 꾸왕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3. 전 하가렌은 애니판 보다 코믹판이 좋더군요. 아아 이곳에선
    밥차기전에는 독서도 못합니다.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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