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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팔가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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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Gakken社의 전략전술병기사전 유럽근대편의 트라팔가해전부분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저작권이 있는 Gakken社와 Ayayoon’s Normal Base외에, 게시물을 무단도용하거나 배포하는 것은 금합니다.

제해권을 건 해상결전

트라팔가 해전

영국군 vs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육지의 대국] 프랑스는, 바다에서도 대국이 되려고 했다. 거기에서 영국은 가장 방해적인 존재였고, 그런 영국에는 해전의 스페셜리스트인 넬슨이 있었다….

원저 Gakken
번역 아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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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기동을 해상에서 재현하려는 오류

1800년 마렝고 회전에서 대승을 거둔 나폴레옹에게 있어서, 적은 영국뿐이었다. 나폴레옹에게 대륙군(라 그랑 다르메)이 있다면, 영국 수상 피트에게는 대해군(로열네이비)가 있다. 영국군은 해전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며 1798년에는 이집트원정에 나온 나폴레옹을 추격하여 나일강하구, 아브키르 만에서 프랑스 함대를 괴멸시키는등, 의연하게 바다의 패권을 쥐고있었다.

1804년 아미앙 화약이 체결되고, 유럽에 잠깐동안 평화가 도래했지만, 이때도 나폴레옹은 쉬지않고 계속 움직였다. 영국제품에 중과세를 주고, 경제적으로 압박을 줬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아미앙 화약(和約)은 1년만에 파기됐다.

나폴레옹의 최종목표는 영국으로의 직접무력침공이었기에, 나폴레옹은 영국함대를 견제하고, 단시간에 해협의 제해권을 쥐는 작전을 고안했다. 3개함대의 연휴에 의한 영국함대의 견제, 즉 유인이었다. 이 시기에 이미 영국은 해협함대, 본국함대, 지중해함대의 3개함대를 가지고서 프랑스의 항만을 봉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함대는 탈출하지 않으면 안됐다.

주력은 프랑스 최대의 군항인 툴롱에 주류하는 함대였다. 툴롱함대가 탈출하여, 동맹국 스페인함대와 카디스 근처에서 합류, 부로뉴에 대기하는 육군을 호위하여, 단숨에 도버를 건넌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브레스트에서도 함대를 탈출시켜, 병력을 아일랜드에 호송하여 영국함대의 눈을 그쪽으로 쏠리게한다는 부대작전이 붙어있었다. 나폴레옹은 육상의 우회기동전을 해상에서 재현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침공군은 총 11만이상이었다. 함대사령관으로는 라·투슈·트레비르 제독이 임명 되었지만, 트레비르는 1804년에 급서했다. 작전은 연기되어, 후임에는 피에르·비유뇌브(Pierre de Villeneuve)가 임명 되었다.
나폴레옹은 130인승부터 50인승까지 각종의 상륙함정을 건조시켜 침공의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조류나 날씨의 변화는 너무 복잡하여, 도협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폴레옹은 역시 육지의 천재였다. 해상기동에는 기상조건이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과 제해권은 지상보다 아득히 넓은 면적에 이르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비유뇌브는 나폴레옹의 명령을 존수하여 1805년 1월 18일, 툴롱에서 탈출했지만,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서, 큰 타격을 입고 툴롱으로 귀환했다. 비유뇌브의 툴롱탈출을 알고 있던 영국함대는 프랑스 함대를 추적하지만, 프랑스 함대의 모습은 없어서, 함대는 영국으로 귀환했다.

영국 함대의 지휘관은, 비유뇌브의 진짜 목적이 영국침공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 지휘관이야말로 한쪽팔·한쪽다리의 제독, 지중해함대 사령관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해군중장이었다. 이때 넬슨은 47세, 한편으로 비유뇌브는 43세였다.

브레스트 함대와의 합류를 꾀한 비유뇌브였지만, 직전에 영국함대와 교전하여, 피해를 입은 함선의 수리를 위해 페롤(Ferrol)항에 입항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함대안전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가령 제해권을 쥐고 있어도, 함대가 남아있으면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전황불리, 프랑스사령관의 예감

8월 3일, 나폴레옹은 침공작전실시를 결의하고, 스스로 부로뉴에 갔다. 영국일지 오스트리아일지, 어느쪽으로든 전력을 기울여야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비유뇌브는 한번 출항을 했다. 그러나 합류해야할 아르망제독과의 연락역으로 파견한 디돈호가 영국의 프리게이트함, 피닉스호와의 일전에서 패하여,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채 카디스항으로 도망쳐 버렸다.

여기에 이르러, 나폴레옹은 영국침공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8월 9일에는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영국이 대불동맹을 맺었다. 이 때문에 전력을 대륙으로 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폴레옹은 비유뇌브 사령관해임을 결정하는 한편으로 함대를 나폴리로 향하게하여, 그 병력을 대 오스트리아전에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넬슨은 프랑스 함대의 집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넬슨도 또한, 이때까지 프랑스 주력함대와의 결전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함대보전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집결한 프랑스 함대를 단번에 격멸하여 제해권을 확립하는 작전이었다.

여기보다 앞서, 영국에 귀환한 넬슨은 짧은 상륙 뒤에 함대를 이끌고 출항했다.
기함 빅토리오 이하 8척의 함대는, 카디스로 향했다. 거기에는 맹우인 콜링우드 제독이 지휘하는 18척의 함대가 선행하고 있었다. 9월 26일 콜링우드함대와 합류한 넬슨은, 총기함을 빅토리호로 정했다.

차석 지휘관에 콜링우드, 기함은 로열 소버린(Royal Sovereign)호였다. 그리고 프랑스 함대의 탈출, 도망방지에 프리게이트함, 유리얼러스(Euryalus)호외의 감시선단을 두고, 정찰을 중요시했다. 정찰함만이 아닌 전함대에 신뢰를 두고 넬슨은 대해전에 임하려고 했다.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비유뇌브는 자신의 함대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승무원의 기량도 부족했을뿐더러, 카디스에서 합류한 스페인 함대는 전의도 낮았기에 도망방지를 위해서 스페인함에 프랑스함을 끼어들게하는 변칙적인 편성을 취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10월 16일 비유뇌브의 기함, 뷔상토르호에 출항준비의 신호기가 나부꼈다. 비유뇌브는 해임의 오명보다도 자신의 손으로 임무를 다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10월 19일, 나폴레옹은 울름(Ulm)회전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분쇄했다. 게다가 그와 같은날,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포탄과 선혈의 항해에 닻을 올리게 되었다.

연합함대의 출범을 안 넬슨은 전함대에 돛을 펴게했다. 연합함대가 카디스에서 떠나는 것을 기다려서 싸움을 걸고, 가능하면 일전으로 자웅을 결정한다. 도망칠 항구가 가깝지 않은 이상, 그들도 죽음에 미쳐 싸우려할 것이다. 프랑스의 해상전력을 격멸하기 위해서, 그것은 필요한 것이었다.

영국이 거느린 전열함은 27척,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33척, 영국이 자랑하는 바다의 늑대 넬슨제독과, 프랑스의 비유뇌브제독이 서로 함영을 인지한 것은 10월 21일 이른 새벽이었다.

●본령을 발휘하는 “넬슨 터치”

전함대에 전투준비가 하령되었다. 장범장(掌帆長/갑판장)이 큰소리를 지르며, 수병들은 돛의 활대를 당기기 시작했다. 신호계 사관, 파스코 해위의 지휘아래, 신호기가 빅토리호의 마스트에서 올라갔다. 해병대의 소년고수병이 드럼을 쳤고, 뒤따르는 전열함들은 차츰 명령 수령의 신호를 내세우며 활대를 선회시켜, 바람 아래로 함수를 돌렸다.

프랑스 함대의 기함인 뷔상토르호의 돛대위에서도 파수꾼이 소리를 내질렀다. 비유뇌브는 전함대에게 바람이 부는 쪽으로 선회하라고 명령했다. 범선끼리의 싸움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점령한쪽이 절대으로 유리하다. 포화만은 교차하지 않았지만 이미 싸움은 개시된 것이었다. 그러나 항상 해상을 누비고 있던 영국함대와, 봉쇄를 만나서 훈련조차 되지않은 연합함대로써는 조함하는 솜씨가 천지차이일수밖에 없었다. 영국함대는 이윽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위치하여 접근해오고 있었다.

빅토리호의 마스트에서 [2열종대를 만들라]의 신호가 떨어졌다. 거대한 전열함이 멋진 움직임을 보이며, 장대한 목조의 성은 2열종대 요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군악대가 [Rule Britannia]를 연주하여, 사기는 점점더 고양되었다.

또한 연합함대도 우선은 2열종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훈련도가 낮은 함대는 정연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3열에서 5열까지 경단과 같이 혼란한 대형이 되어있었다.

200년전의 아르마다 해전이후, 해전술은 현측에 다수의 대포를 갖추어 전열을 짜는 전술로 진보했다. 조선기술이 발달하여 함대의 통일행동이 가능하게되고, 거대한 함선을 건조하여 처음 실현할 수 있던 전법이었다. 전열함이라는건 틀림없이 이 때문에 태어난 함선이었다.
프랑스해군은 이런 사고를 철저하게 해서, 함선을 규격품과 같이 갖추고 있었다. 74문함이 많은 것은 여기에 기한다. 그러나 지금 비유뇌브는 그런 우위를 스스로가 버리고 있었다.

스페인 함대의 전의를 의심한 나머지, 74문함을 스페인함대에 끼어들게 했기 떄문이었다. 게다가 스페인함대에게는 세계최강의 거함으로써 알려진 140문함, 산티시마 트리니다드(Santissima Trinidad)호를 시작으로, 강력하지만 속도가 느림 함선이 많았다. 프랑스 함대는 느려터진속도에 맞춰야만한데다가 낮은 훈련도와 더불어서, 운동능력은 영국함대와 승부가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보고, 대담한 미소를 띄우는 함장이 있었다. 뷔상토르호에 뒤따르던 74문함, 루드타블르(Redoubtable)호의 쟝·쟈크·에티엔느 류카(Jean Jack Etienne Lucas)함장이었다. 류카는 자함대의 훈련도가 영국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걸로 포격과 조함으로는 승부하지 못하고, 그냥 접현을 통현 적진침투로 혈로를 열어 작전을 세우고 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류카는 각각의 마스트위에 다수의 저격수를 배치했다.

영국함대는 모든 돛을 펴고 전진했다. 시속 3노트. 그대로 시간은 흘러 충분한 거리를 좁혔을때에 넬슨이 신호를 올리라고 명령했다.
일련의 신호기가 선명하게 바닷바람에 펄럭였다.

[영국은 귀관들 모두가 각자의 의무에 다하기를 기대한다]

오전 11시 40분, 각 전열함의 포갑판에서는 대포의 밧줄이 풀리고 발사준비에 들어갔다. 적색으로 칠해진 갑판에서는 모래가 뿌려지고 포수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전투개시를 기다렸다. 주 가로돛을 감아올리며 전투준비가 완전히 끝났을 때, 사정거리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프랑스 함대의 1척이 갑자기 배의 측면에서 일제히 포를 쏘았다.

그러나 영국함대는 직진했다. 비유뇌브는 눈을 부릅떴다. 영국함대는 2열의 대열을 제각기 기함을 선두로 연합함대의 옆구리에 찔러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넬슨터치. 넬슨의 필승전법이었다. 아군은 2열로 나뉘어 적함대에 직각으로 돌입하여 전열을 분단, 각개격파를 한다. 적함대는 포를 거의 사용할수 없었고 더욱이 방어가 약한 함수와 함미에서 사격되는것에 반해, 영국함대는 뱃전의 모든 대포가 좌우현 전탄 발사가 가능했다.

이때부터 거의 100년뒤에 도고헤이하치로가 사용한 전면압박전법의 선구를 이룬 전법이었다.

연합함대는 분단되어, 영국함대는 모든 대포를 내세우며 포격을 개시했다. 포연이 포갑판에 넘쳐흐르고 그 안에서 불을 뿜기 시작한 중포가 갑판을 차오르며 뒤로 밀려났다.

포탄이 명중한 함선에서는 목재의 파편이 흩날렸고, 꺾여버린 마스트가 삭구(배에서 쓰는 밧줄이 종류)을 질질끌며 무너졌다. 영국함대의 2번째 종렬의 안쪽,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앞서 돌입한 콜링우드의 전열이었다. 로열소버린호는 연합함대의 전열을 돌파할때에 연달아 일제사격을 퍼붓고 스페인함대의 부장 아르바제독이 좌승한 산타아나호측면에 포격했다. 같은 상태로 후속함도 측면사격을 퍼부은 뒤에는 가까운 적함에 접근하여 잇달아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한편 빅토리호의 전열은 조금 늦게 돌입했다. 뷔상토르호 전후의 프랑스함은 포격을 집중하여 빅토리호는 몸부림을 치며 돌진했다. 비유뇌브는 영국함대의 삭구에 포격을 집중하도록 명령하고 프랑스함대는 쇄탄(鎖彈)이나 봉탄(棒彈)을 내뿜으며, 마스트나 삭구의 절단을 시도했지만, 포격술은 졸렬한 나머지 많은 포탄은 마스트에도 미치지 못하고 함체에 명중, 구탄(球彈)보다도 가벼웠기 때문에 효과도 없었다.

넬슨은 함의 지휘를 하디함장에게 맡기고, 함대지휘에 전념했다. 프랑스함대도 반격했다. 뷔상토르호에 이에 넵투노호와 르두타블르호가 포격을 가하는것에 대하여, 빅토리호는 양현에서 포열을 밀어넣었고, 좌현에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호를 종사포격하고, 우현에서는 르두타블르호를 상대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르두타블르호가 가지고 있던 기회였다.

●제독의 죽음과 맞바꿔서 얻은 영국의 승리

[접현하여 백병전을 펼쳐라!]

류카가 소리치자 르두타블르호가 빅토리호에 접현하여 백병전을 펼쳤다. 빅토리호의 해병대가 과감히 맞아싸웠다. 장렬한 백병전이 개시된 것이었다.

같은 광경이 수도없이 전개가 되었다. 르두타블르호는 포격을 중지하고 모든 전력을 백병전과 저격에 기울렸다. 그리고 저격수의 한사람이 함미갑판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넬슨을 쏜것이었다. 쓰러진 넬슨은 바로 병실로 옮겨졌다. 류카는 백병전을 증강하고 빅토리호도 수병과 해병대를 동원했다.

오후2시, 양함대는 완전하게 밀착해서, 어떤 함선이라도 칼날과 총화의 불꽃이 소용돌이쳤다. 뷔상토르호는 3척의 영국함에서 공격을 받아, 비유뇌브는 항복했다. 아르바제독은 깃발을 내리고 프랑스함대의 부장 마곤의 함선도 영국의 함대에 포획되었다. 포격전에서 열세였던 연합함대는 전현전에서도 만회하지 못하는 전투의 귀추는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해가 기울시각에 연합함대는 많은 함선을 잃고 있었다. 콜링우드전대는 10척, 넬슨전대는 3척을 수중에 넣었다.

넬슨은 쓰러졌지만, 전법은 완벽한 기능을 했다.
2열의 종진(縱陣)에 분단된 연합함대에게서 선행하는 1등급함의 포격으로 타격을 주고, 뒤이어 2등급, 3등급함으로 접현, 포획을 맡기는 전법을 채택했다. 그것에 의해 전투력을 잃은 연합함대는 차츰차츰 포획되어진 것이다.

이때, 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프랑스함대의 뒤마누아(Dumanoir) 전대가 반전하여 역습을 시도했다. 그러나 조함에 시간이 걸린데다가 겨우 함수를 돌렸을때에는 넬슨전대의 뒷부분에 붙어있던 전열함이 바람의 우위를 차지하며 유격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뒤마누아는 무서웠던 것인지, 그대로 전장에서 도주했다. 연합함대에게 건전한 함선은 남아있지 않았다. 계속 분전하고있던 르두타블르호도 빅토리호, 테메레아호의 2척을 상대로 류카를 포함해서 전승무원의 8할이상이 전사 및 부상을 당하고 결국 깃발을 내렸다.

오후 4시 30분경, 넬슨은 승리의 소식을 들으면서 숨을 거두었다. 넬슨은 승리와 영광의 속에서 생애를 마감하고, 영국은 제해권을 확고히했다.

영국해군의 조함술과 포술, 거기에다 투지가 연합함대를 압도했다. 연합함대의 포는 옛날부터 화승식점화장치를 사용했지만, 영국군은 수석식장치(燧石/부싯돌)와 화승을 병용했기 때문에, 정확한 발포 타이밍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리고 발사간격도 연합함대의 절반 이하였고, 처음부터 함대를 노리는 적의 전투력을 소멸시켰다. 연합함대는 넬슨 터치에 분단되어, 통일된 함대햄동을 취할수 없었다.

해전의결과,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한 프랑스군은 대륙봉쇄령에 의한 영국 경제압박전과 로시아원정에 실패하여 나폴레옹은 몰락했다.
트라팔가 해전은 전사상 최초의 제해권을 건 전투였고, 그것은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을 비추는 것이었다.

영국함대

함명 / 포문 / 지휘관

Victory / 100 / Capt. Thomas Masterman Hardy
Temeraire / 98 / Capt. Eliab Harvey
Neptune / 98 / Capt Thomas Francis Freemantle
Leviathan / 74 / Capt Henry William Bayntun
Britannia / 100 / Capt Charles Bullen
Conquerer / 74 / Capt Israel Pellew
Africa / 64 / Capt Henry Digby
Agamemnon / 64 / Capt Sir Edward Berry
Ajax / 74 / Lieut John Pilford
Orion / 74 / Capt Edward Codrington
Minotaur / 74 / Capt Charles John Moore Mansfield
Spartiate / 74 / Capt Sir Francis Laforey
Royal Sovereign / 100 / Capt Edward Rotheram
Belleisle / 74 / Capt William Hargood
Mars / 74 / Capt George Duff
Tonnant / 80 / Capt Charles Tyler
Bellerophon / 74 / Capt John Cooke
Colossus / 74 / Capt James Nichol Morris
Achille / 74 / Capt Richard King
Dreadnought / 98 / Capt John Conn
Polyphemus / 64 / Capt Robert Redmill
Revenge / 74 / Capt Robert Moorsom
Swiftsure / 74 / Capt William Gordon Rutherford
Defiance / 74 / Capt Philip Charles Durham
Thunderer / 74 / Lieut John Stockham
Defence / 74 / Capt George Hope
Prince / 98 / Capt Richard Grindall

이하 프리게이트함

Euryalis / 36 / Capt Hon Henry Blackwood
Naiad / 38 / Capt Thomas Dundas
Phoebe / 36 / Capt Hon Thomas Bladen Capell
Sirius / 36 / Capt William Prowse
Pickle / 10 / Lieut John Richards La Penotiere
Entreprenante / 8 / Lieut Robert Benjamin Young

프랑스 함대

함명 / 포문 / 지휘관

Bucentaure / 80 / Villeneuve Magendie
Formidable / 80 / Dumanoir le Pelley Letellier
Algesiras / 74 / de Medine Le Tourneur
Indomptable / 80 / Hubert
Neptune / 80 / Maistral
Pluton / 74 / Cosmao-Kerjulien
Mont Blanc / 74 / La Villegris
Swiftsure / 74 / l’Hospitalier-Villemadrin
Scipion / 74 / Bellenger
Berwick / 74 / Filhol-Camas
Intrepide / 74 / Infernet
Aigle / 74 / Courrege
Heros / 74 / Poulain
Fougueux / 74 / Baudoin
Duguay Trouin / 74 / Touffet
Argonaute / 74 / Epron
Redoutable / 74 / Lucas
Achille / 74 / Denieport

이하 프리게이트함

Hermione / 40 / Mahe
Hortense / 40 / La Marre La Meillerie
Cornelie / 40 / de Martinenq
Themis / 40 / Jugan
Rhin / 40 / Chesneau
Argus / 10 / Taillard
Furet / 18 / Dumay

스페인 함대

함명 / 포문 / 지휘관

Santissima Trinidad / 130 / Baltaser Cisneros Uriarte
Principe de Asturias / 112 / Gravina Escano
Santa Ana / 112 / de Alava Gardoqui
Argonauta / 80 / Pareja
Neptuno / 80 / Valdes
Rayo / 100 / Macdonell
Montanes / 74 / Alcedo
Monarca / 74 / Argumosa
San Juan Nepomuceno / 74 / Churruca
San Francisco de Asis / 74 / de Flores
Bahama / 74 / Galiano
San Justo / 74 / Gaston
San Leandro / 64 / Quevedo
San Augustin / 74 / Cajigal
San Ildfenso / 74 / de Vargus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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